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
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
- 배경숙 선생의 박사학위 논문(경북대학교)과 대구일보에 연재되었던 <배경숙의 영남아리랑 기행>을
- 참고해 보면 문경아리랑의 역사와 배경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.
- "민요의 경우 첫 절은 그 노래의 '코드'를 담고 있다. 대개는 노래의 형성배경을 담고 있고, 곡명을 담고 있고,
- 나아가 선호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렇게 본다. 이런 예의 전형적인 민요가 바로 문경아리랑이다.
- 첫 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.
"문경 새재야 물박달나무 /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."
- 이 가사를 통해 형성지역이 경북 문경이고, 경복궁 중수기의 특산품인 박달나무가 공출로 다나가는 상실감을
- 노래한 것으로 그 역사적 배경과 시기가 조선조말 대원군의 폭정이 있던 시기임을 알게 한다.
- 나아가 형성기 당대에 대원군의 수탈상을 비판하는 것을 공동체가 공감하여 널리 불렀음도 알게 한다.
- 그런데 이 아리랑을 통한 문경지역 공동체의 저항의식은 문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.
- 당시 전국은 대원군의 강제 부역과 공출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있던 상황이라 문경아리랑의 이 첫가사는
-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. 그래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.
-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, 방송․출판 같은 매체가 없던 시절에 하나의 노래가 전국에
- 확산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. 단적으로 말하면 문경아리랑은 당시 전 국민의 마음게 공감을 얻은
- 최고의 유행가였다는 것이다. 그 실증들은 문헌 기록과 전승 민요들에서 확인 되는데,
- 세가지 방향에서 확산된 실증을 확인한다.
하나는 상실감을 확대하여 불려진 것이다.
문경새재 덕무푸레 / 말채 쇠채로 다 나간다.
문경새재 박달나무 / 북바듸 집으로 다나간다.
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면 / 큰 애기 손질에 다 녹는다.
뒷동산에 박달나무 / 길마까지로 다 나간다.
화개연곡(구례군) 큰애기는 / 알밤 주시로 다나가고
동구(함양)마천 큰 애기는 / 꼬감 접으로 다나간다.
대장부 쓸만한 건 / 징용징병으로 다나간다.
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/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고나.
두번째의 확산실증은 지역명을 붙여 불렸다는 것이다.
- 월정오대산 박달남근 / 축자왕자로 다 나간다.
- 제게야 봉산에 박달나무 / 홍두깨방망이로 다나간다.
세번째 형태는 다른 지역 전승민요에 첫 절로 수용되어 부른 것이다.
- 이 경우는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(1938년 방송자료)의 첫 절에서 '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/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고나' 로
- 불린 예가 그것이다. 이는 필자의 조사일 뿐 그 실상은 더 많았을 것이다. 이는 당시 문경아리랑의 전국적인 대유행가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.
- 1912년 조선총독부가 조사 한 [이요․이언급 통속적독물등조사(俚謠․俚諺及 通俗的讀物等調査)]에서 전국 30여개 군에서 아리랑류가
- 조사 되었다는 사실과 그 아리랑들에서 문제의 ‘문경새재....’의 사설이 확인된다는 사실에서 입증이 된다. 이렇게 하여 세가지 논점 중에서
- 첫 번째 문제인 전파계기, 즉 정치적 대역사를 계기로 문경아리랑이 7년간의 경복궁 중수 기간에 널리 불렸고,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아리랑의
- 형성에 역할을 했음을 살폈다.